[연합뉴스] "지구온난화 '소욕지족'이 답"고요한소리'전하는 활성스님
- 관리자
- 2019-10-19 조회수 : 3357
30여년간 '붓다 가르침' 담은 소책자 발간…"'500원 책값' 올릴 생각 없어"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우리가 정말 족(足)할 줄 알까요. 족할 만한 상황인데도 족할지를 모르지요. 웬만하면 만족할 만한데 '더, 더더'라고만 하지요."
여든을 넘긴 노승(老僧)은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로 지구온난화를 들며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욕심을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인류 사회의 최고 가치가 된 요즘, 우리는 오히려 행복의 반대편으로 간다. 많은 게 최고라는 덕목은 만족을 모르게 했고, 언제나 성에 차지 않는 채 스스로 불행으로 내몬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다익선이라는 늪에 빠져버린 걸까
그는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경쟁을 불행의 배경으로 봤다. 개인의 탐욕을 키우는 경쟁은 전면적으로 벌어지고, 이 경쟁을 부추겨온 핵심에는 자본주의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인류에 해악만 끼친 것은 아니다.
식량 문제만 놓고 보면 자본주의가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구해냈다고 그는 평가했다. 반면 구소련이나 동유럽 등이 만들었다는 그들만의 사회주의 체제는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 무참히 실패했다. 가까운 중국만 보더라도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배고팠던 중국 민중의 손을 잡고 다다른 종착지는 공산주의가 아닌 '신(新)자본주의' 세계라는 것.
"자본주의는 낡아빠진 기와집이에요. 낡은 집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집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먹여 살리는 데 성공했음에도 지구온난화라는 재난을 낳고 있기에 더는 철벽처럼 버티지 못할 것으로 봤다. 자본주의 스스로가 존재의 정당성을 주장할 만한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것이다.
대신 스님은 이 체제가 낳은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소욕지족(少欲知足)'하는 삶의 태도를 부각했다. 소욕은 말 그대로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 지족은 족함을 아는 것이다.
"우리 자식 세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 하나만이라도 물려주기 위해서, 당장 내가 노후를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소비를 줄이자고 한다면 모두가 따라줄 의향이 있지 않을까요."
지구온난화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도 전열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인류는 어찌 보면 위기가 아닌 멸망 앞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대욕(大欲)을 지양하고 소욕으로 돌아서야 할 이유다. 이젠 아껴 쓰자는 게 아니라 쓸 것도 쓰지 말고 최소화해보자는 게 노승의 바람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요한소리' 사무실에서 만난 활성스님은 여든둘이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인터뷰 시작 전 "잔귀가 먹었다", "이야기를 길게 하면 그다음 날 몸살이 난다", "이야기처럼 기운 빠지는 게 없다"고 했지만, 법문이 더해갈수록 말에는 힘이 들어갔고, 얼굴은 오히려 밝아지는 듯했다.
고요한 소리는 32년 전 스님이 주축이 돼 만든 단체다. 오래전부터 뜻을 함께한 온 회원들과 '붓다'의 불교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집중했다. 고요한 소리라는 말 자체에 부처의 말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요한 소리가 부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은 손바닥만 한 작은 책자. 1980년대 후반부터 회원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해 스님과 함께 소책자를 만들었다.
책자는 '보리수잎', '법륜', '소리' 세 종류의 연간물 형태로 발간된다. 보리수잎이 부처의 말씀을 소개하는 대중서라면 법륜 시리즈는 이보다 조금 더 깊이를 더해 안을 들여다본다. 불교 관련 학술논문에서도 인용할 만한 내용이 많다. 소리는 부처의 깨달음을 전하는 활성스님의 법문을 담았다.
그는 최근 10여년 간 지리산 자락을 고집하며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꾸준히 소책자를 통해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한다.
대중 앞에서 그가 법문을 행하기는 최근 3년간 고요한 소리가 연 '중도(中道) 포럼'을 통해서다.
그래도 가르침이라면 대중이 직접 말로 듣고 배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스님은 무엇이 더 효과적일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듯 답했다.
"책을 내면 몇만 명이 읽잖아요. 그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요. 고요한 소리에서 경전을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언어 번역을 넘어 뜻 번역을 하자. 부처님의 의도를 살려내 활자화한 말씀을 넘어 인류에게 전파하자며 해온 거예요."
이 단체가 지난 30여년간 발간한 소책자는 아흔 권이 넘는다. 강산이 족히 세 번은 바뀌었지만, 소책자 가격은 오래전 그대로다.
소책자 중 크기가 작은 보리수잎은 각권 500원, 나머지 시리즈는 각 1천원이다. 책 내용과 이를 만든 노력에 비하면 책값은 '공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은 소책자를 낼 때부터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물러서지 않는 그 원칙은 한글세대도 읽을 수 있는 불교책을 만드는 것이다. 한문투성이인 불교책으로는 더 이상 불교가 발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음으로 불교책에 오탈자가 많은데 최선의 노력으로 화려하진 않더라도 반듯한 책을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마지막으로 중생이 널리 읽을 수 있도록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책값을 비싸게 받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편집이 잘 돼 손에 잡힐 만한 책을 많이 산다고 하자 그래도 "가격을 올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스님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자책할 만한 일이 많지만 그래도 개중에 잘한 일을 꼽는다면 바로 '출가(出家)'라고 했다.
1938년생인 그는 1960년대 '독서신문'이라는 주간지 기자로 일하다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친견한 경봉스님이 '한 생 안 난 셈 치고 살아라!'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후 함께 바둑을 둔 검사(檢事) 친구와 그 가족이 어느 날 변고(變故)로 세상을 등지자 세상살이가 무심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안 난 셈 처라'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머리를 스쳤고, 공부하며 세속을 벗어나자는 생각에 출가를 결심했다.
노승에게 철학을 넘어 건강 유지법도 궁금했다. 하루를 새벽 예불(禮佛)로 시작한다는 활성스님은 인터뷰를 하기 전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더니 사무실 내 차려진 불상 앞에서 곱게 예를 올렸다.
"오전, 오후 포행(布行)을 해요. 참선(參禪)은 앉아서 하면 좌선(坐禪), 누워서 하면 와선(臥禪), 걸으면 행선(行禪)이라고 하죠. 수행 목적도 있지만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이랄까요. 저도 참 걷기 싫은 날이 있지만 다리가 약한 사람일수록 꼭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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