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활성 스님께서 2001년 4월 28일 참여연대 강당, 2004년 10월 16일 남원 역경원에서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김용호가 엮어 정리하였다. 본문에 인용된 경은 PTS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산냐란 무엇일까? 산냐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만큼 산냐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금강경》에 산냐를 가리키는 말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습니다.
사족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산냐를 한문으로 번역할 때 ‘생각 상想’ 자로 쓰는데, 구마라습鳩摩羅什Kum?raj?va(344~413)의 《금강경》 번역에는 ‘마음 심心’ 받침을 빼고, ‘서로 상相’ 자로 썼습니다. 이건 또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 대해 설이 분분합니다만, 구마라습이 중국인들의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에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산냐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산냐 자체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산냐에 의해서 인식되는 ‘나, 사람, 중생, 수자’처럼 그 대상을 먼저 부각시켜서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냐야말로 부처님이 특별히 깊이 있게 다루신 과제인데, 이런 개념을 접해보지 못한 문화권에선 생소하고 난해할 테니까요.
산냐를 영어로는 ‘지각perception’6 또는 ‘통각apperception’ 이라고 번역합니다.
지각이라고 하면, 산냐를 너무 순수한 인지 작용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각이란 가치 개입이 배제된 용어로서 객관적이고 몰가치적이며 과학적인 냄새가 매우 진합니다.
이처럼 지각이라는 말은 산냐와 안 맞는 면이 있으므로 최근에는 심리학 전문 용어인 ‘통각’이란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통각이란 ‘과거 경험에 비추어 새 경험을 인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