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서
부처님께서 선정공부를 지어가는 방법에 대해 설하신 경은 여럿이 있다. 그 중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염처경〉과 〈출입식념경〉 등을 들 수 있다. 비교적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염신경念身經〉은 어쩌면 그러한 일련의 경들 중 가장 먼저 설해진 기본적인 경인지도 모른다. 용어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논의의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염신경〉이 짧은 가운데 주요한 점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경부터 먼저 독자에게 소개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이번에 옮기기로 하였다.
《중부中部》의 제119경인 이 경의 중요성을 소개한 칸띠빨로 스님의 글 이번 옮김에 있어 주로 참조한 냐나몰리 스님의 《A Treasury of the Buddha’s Words》는 그의 유고를 칸띠빨로 스님이 정리하여 출간한 것인데, 이 글은 거기에 실린 본 경의 서문임(편집자 주).
을 옮겨본다.
이 몸뚱이를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이 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신체에 대한 염’ 신체에 대한 염 : 원문은 kāyagatā sati로 ‘신체로 간 또는 신체에 이른 염念’의 뜻. 본문에서는 ‘신체에 대한 염’으로 옮긴다. 염처경 등에서는 같은 대목에서 gatā-sati 대신 anupassin (隨觀)을 쓰고 있어 동의어 같기는 하나 정定과 혜慧의 역점의 차이를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한역은 ‘念身’, 일역은 ‘身行の 念’, 영역은 ‘mindfulness of the body’.
을 말씀하신 취지를 알고 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몸이 실제로는 낡은 지도상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인적미답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갖가지 관법觀法 훈련을 활용하여 이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일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깊은 정글 속에 탐욕과 집착이 계속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신체에 대한 염의 맛을 못 본 사람은, 감로[不死]의 맛을 못 보고, 신체에 대한 염의 맛을 본 사람은 감로의 맛을 본다.”(《증지부》Ⅰ권 45쪽)는 말씀도 그 중의 한 예이다.
따라서 신체에 대해 염하지 않으면 거듭되는 생사의 고통 속에서 헤매게 되고, 반대로 신체에 대한 염을 ‘익히고 끊임없이 닦으면’ 불사의 경지, 즉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이 공부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열 가지 이익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수행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빠알리경을 남들보다 뒤늦게 접하는 입장이다. 그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빠알리경 연구가 많이 진척되었고 훌륭한 번역들도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그들의 연구 성과를 차근차근 섭렵하여 소화하는 일부터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겸허한 자세가 견지되어야 한다. 이번 경의 옮김도 그러한 입장에서 외국의 학문적 성과를 수용하는 데 치중했다.
주로 참조한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A Treasury of the Buddha’s Words》
냐나몰리 스님의 유고, 칸띠빨로 스님 편저
《The Heart of Buddhist Meditation》 냐나뽀니까 스님 지음
《Middle Length Sayings》I. B. 호너의 영역(P.T.S판) 《중아함中阿含》의 〈염신경念身經〉 《남전대장경》 일본 《The Jhānas》(Wheel Publication No.351∼353)
구나라따나 스님 지음 《The Path of Purification》 냐나몰리 스님 영역 그 외의 여러 역자들에 의한〈염처경〉역본들.
- 1991년 〈고요한소리〉 편집실 -